마차에서 자동차로 운송 수단이 변했다. 그런데 도로는 여전히 진흙탕이다. 운송 수단이 바뀌었으면 그에 걸맞은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 자동차 관련 기술만 개발해선 자동차를 상용화하기 어렵다. 김영석 EY한영 파트너가 블록체인 프로젝트도 종합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든 비유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을 하려면 비즈니스 측면, 기술적 측면, 실행적 측면을 모두 고려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미다.
EY한영은 회계감사, 세무, 어드바이저리(advisory), 재무자문 등 4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회계법인이다. 국내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EY한영은 별도로 블록체인 팀을 두고 있다. 여기에 소속된 컨설턴트는 모두 8명이다. 이 팀을 이끄는 김영석 파트너, 그리고 진창호 상무를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동 EY한영 본사에서 만났다.
진창호 상무는 “개념증명(PoC)을 성공적으로 마친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많지만 이후 활성화되는 프로젝트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념증명이 실질적으로 사업까지 연결되지 않는 이유가 기업이 블록체인 기술에만 집중하는 데 있다고 전했다. 블록체인 기술은 전체 시스템의 일부다. 이를 사업화하려면 사전에 거버넌스 모델을 설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이끌어 나갈지 총체적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블록체인은 기저 기술이기에 이를 사업화하려면 융합기술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전했다. 블록체인 기술에 인공지능(AI), 5G 같은 기술이 접목됐을 때 다양한 참여자가 생태계에 합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진 상무는 “사업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비즈니스 모델을 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통 처음에는 특정 참여자가 ‘우리 기업’에 도움이 되겠다는 관점에서 블록체인에 접근한다. 그러나 블록체인은 생태계 참여자가 함께 들어오는 사업이다. 생태계에는 여러 이해관계자가 포함돼 있다. 이러한 다양한 니즈를 충족할만한 비즈니스 모델을 짜기가 쉽지 않다고 그는 설명했다.
진창호 상무는 “EY한영은 2년 전에 하이퍼레저 컨소시엄에서 나왔다”며 그것이 지속가능한 모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 까닭을 설명했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사용하려 비용을 들여야 하는 구조는 계속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의미다. 하이퍼레저는 리눅스 재단(Linux Foundation)이 운영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 프로젝트다. 진 상무는 “EY한영이 진행하는 대부분의 PoC는 퍼블릭을 지향하는 이더리움에서 하거나 향후 퍼블릭화 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네트워크상에서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EY뿐 아니라 앞으로 많은 기업이 퍼블릭 블록체인으로 갈 것이라 내다봤다.
높은 평가점수를 받게 된 비결을 묻자 김영석 파트너는 “미국과 유럽에서 먼저 검토하고 검증했던 블록체인 관련 아이디어가 거의 실시간으로 한국과 공유가 된다”고 답했다. 이를 토대로 정부에 검증된 사례를 제시했다는 설명이다.
EY는 COE(Center of Excellence)를 구축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새로운 분야의 역량을 키운다. 블록체인과 관련한 COE는 세계적인 거점도 있고, 각 대륙에도 있다. 전 세계 블록체인을 총괄하는 COE 글로벌 리더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아시아에선 싱가포르와 상하이에 각각 COE가 있다. 한국은 싱가포르 COE와 연결해 교류하고 있다. 매달 한 번씩 전 세계 블록체인 COE 리더들이 회의를 진행한다. 아시아 COE도 이와 별개로 한 달에 한 번 회의를 열고, 사업기회 등 각 국가의 정황을 공유한다.
김영석 파트너는 블록체인은 “초창기 이해단계, 열풍의 단계를 거쳐 안정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 블록체인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기에 “올해와 내년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진창호 상무는 “국가가 주도하는 컨소시엄, 산업이 주도하는 컨소시엄, 플랫폼 기업이 주도하는 컨소시엄 등 다양한 주도의 축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 시점에서 한국도 주도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간이 별로 없다며 “기업과 정부 등 한국의 다양한 주체가 나서서 적절하게 지원하고, 제도를 완화하는 등 블록체인을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도예리기자 yeri.do@decenter.kr
- 도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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