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시장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트론이 테더(USDT) 발행량에서 이더리움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선 것으로 나타났다. 빠른 거래 처리 속도와 사실상 무료에 가까운 수수료 구조를 앞세워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압도적 지배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다만 위임지분증명(DPoS) 합의 방식으로 거래 기록 권한이 소수에 집중된 트론이 스테이블코인 주요 네트워크로 부상하면서 중앙화 리스크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30일 오후 4시 가상자산 데이터 제공업체 디파이라마에 따르면 트론 기반 USDT 발행량은 814억 달러 규모를 돌파했다. 이더리움에서 발행된 USDT 발행량(670억 달러)를 크게 앞지른 수치다. 연초와 비교하면 35% 증가했다. 트론 블록체인의 USDT 발행 점유율도 49.54%로 치솟았다. 전체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60%가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는 USDT의 약 절반 규모가 트론에서 발행되는 셈이다.
온체인 데이터 분석업체 크립토퀀트는 올 상반기 보고서에서 “트론이 이더리움을 제치고 스테이블코인 전송과 결제의 메인 네트워크로 자리잡고 있다”며 “특히 대규모 USDT 사용에 있어서 최고의 네트워크"라고 분석했다.
트론이 급성장한 요인으로는 빠른 네트워크 처리 속도와 사실상 0원에 가까운 수수료가 꼽힌다. 거래소 간 이체나 국경 간 결제에 주로 쓰이는 스테이블코인의 특성상 트론이 이더리움보다 실용적 네트워크로 인식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더리움은 트론보다 수수료가 비싸고 처리 속도도 느리다. 이날 오후 5시 34분 기준 업비트에서 이더리움 기반 USDT를 출금할 경우 총 4.2달러의 수수료가 부과된다. 거래소 출금 수수료 약 4달러에, 이더리움 가스 트래커 기준 네트워크 수수료 약 0.2달러가 추가된다. 반면 트론의 경우 업비트 입출금 수수료가 무료에다 네트워크 수수료 또한 일일 일정량의 대역폭 한도 내에서는 무료로 제공돼 사용자 부담이 없다.
이는 트론 블록체인의 구조적 설계와 관련이 있다. 이더리움은 지분증명(PoS) 합의 방식으로 수천 명의 검증자가 경쟁하며 거래를 처리하는 구조다. 반면 트론은 위임지분증명(DPoS) 방식에 기반해 27명의 '슈퍼 대표(Super Representative·SR)’를 투표로 선출하고 이들이 블록 생성과 검증을 전담한다. 소수의 대표들이 순차적으로 블록을 생성하기 때문에 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네트워크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거래 기록 권한이 소수에 집중돼 투명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트론의 중앙화 위험성이 스테이블코인 시장 주요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론의 전 최고기술책임자(CTO) 루시엔 첸은 2019년 트론을 떠나면서 “트론의 DPoS는 유사 탈중앙화에 불과하다. 27개 SR들 대부분이 트론 측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며 “토큰 분배와 SR, 코드 개발, 심지어 커뮤니티마저 중앙에서 통제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다만 저스틴 선 트론 창립자는 이 같은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SR이 수많은 후보자를 대상으로 한 정기 투표를 통해 계속해서 새롭게 선출·교체되는 구조로 탈중앙성을 충분히 유지하고 있다는 반박도 있다. 블록체인 시장조사기관 메사리는 “올해 1분기 말 기준 395개의 후보자가 투표를 받으며 중앙화 우려를 완화하고 있다"면서 “가장 많은 득표를 얻은 ‘바이낸스 스테이킹’도 득표율이 7.3%에 불과해 어느 단일 주체도 전체 투표의 10% 이상을 획득하지 못한 점은 중앙화 리스크를 희석시키는 요소”라고 분석했다.
- 김정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