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국내 5대 거래소에서 상장 1년 미만 종목이 유의종목으로 지정된 사례가 20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 후 불과 4일 만에 유의종목으로 지정되는 종목까지 나오면서 거래소의 상장 심사 부실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최근 거래소들이 잇달아 신규 상장을 쏟아내며 우려가 더욱 커지는 가운데 금융당국의 연내 공적 규제 도입으로 과열된 상장 경쟁에 제동이 걸릴지 주목된다.
22일 가상화폐 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국내 5대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에서 상장 1년 미만 종목이 유의종목으로 지정된 사례가 약 20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소별로는 업비트 1건, 빗썸 4건, 코인원 6건, 코빗 4건, 고팍스 4건으로 집계됐다. 특히 고팍스에서는 유엑스링크(UXLINK)가 9월 19일 상장 후 불과 4일 만인 9월 23일 유의종목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업비트·빗썸·코인원이 9월 15~16일 상장한 바운드리스(ZKC) 역시 16일 만인 10월 2일 유의종목으로 지정됐다.
단기 유의 지정 사례가 반복되면서 거래소 상장 심사 과정의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최근 거래소들이 단기간에 신규 코인 대거 상장하는 상장 러시를 이어가면서 부실 상장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9월 한 달간 업비트와 빗썸의 신규 상장 코인은 각각 16개, 19개에 달한다. 거래소들이 거래 실적에 따라 보상을 지급하는 상장 기념 이벤트를 통해 거래량을 늘리고 신규 투자자를 유인하는 마케팅을 병행하면서 투자자 피해가 더욱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3개 거래소가 바운드리스를 16일간 거래한 금액은 총 2조 5000억 원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렸겠는가”하며 “가상화폐 발행자와 16일 만에 유의 지정될 것을 상장시킨 거래소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이에 금융당국이 연내 가상자산 상장에 대한 공적 규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거래소들의 대규모 부실 가상화폐 정리가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융위원회가 연내 발표할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 2단계 법안에는 거래소의 상장·폐지 기준과 상장 종목 공시 의무 등을 포함한 상장 규정이 담길 전망이다. 그동안 자율규제에 맡겨졌던 가상자산 상장 절차에 처음으로 법적 기준이 적용되는 셈이다. 2021년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시행을 앞두고 업비트가 가상자산 24종을 한꺼번에 상장폐지한 전례가 있어 이번에도 비슷한 정리 국면이 재현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당국이 핵심 근간으로 삼을 것으로 알려진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닥사) 거래지원 모범사례가 그대로 반영될 경우 부실 상장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특히 익명 발행 주체가 별다른 사업 목적 없이 만든 밈코인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다. 닥사는 5월 모범사례를 개정하며 밈코인에 한해 ‘커뮤니티 회원 10만 명 미만'이나 ‘거래량(트랜잭션) 100만 건 미만’ 등의 느슨한 상장폐지 기준을 제시했다. 해외 거래소에서 6개월 이상 거래됐을 시 이 같은 기준조차 면제하는 조항도 추가했다. 결과적으로 사실상 다수의 밈코인이 심사 면제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현재 5대 거래소 기준 밈코인 상장 수는 업비트 11개, 빗썸 18개, 코인원 26개, 코빗 5개, 고팍스 1개로 중복 포함 총 61개에 달한다. 이 중 상당수가 발행·운영주체가 ‘알 수 없음’으로 표기돼 있는 등 기본 정보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기준으로는 자율규제가 아닌 ‘자율 방임’에 가깝다”며 “법제화 이후에도 투기성 상장이 계속되지 않도록 2단계 입법 과정에서 이 같은 문제 충분히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김정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