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가상화폐 시장을 강타한 사상 최대 규모의 강제청산 사태 여파로 주요 코인들의 시가총액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올해 중순까지만 해도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를 제치고 비트코인(BTC)·이더리움(ETH)에 이어 3위까지 올라섰던 엑스알피(XRP)는 최근 한 달 새 23% 급락하며 시총 5위로 밀려났다.
17일 가상자산 시황 중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30분 기준 XRP는 전일 대비 3.58% 하락한 2.34달러에 거래됐다. 일주일 전보다 17%, 한 달 전과 비교해선 23% 떨어진 수치로 스테이블코인을 제외한 주요 가상자산 상위 5종 가운데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XRP의 급락은 미국 현지시간으로 10일 발생해 ‘검은 금요일’로 불리는 대규모 강제청산 사태의 여파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0% 대중국 관세 부과를 예고하자 불과 24시간 만에 가상화폐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190억 달러(약 26조 9800억 원) 이상의 레버리지 포지션이 강제 청산됐다.
대규모 청산이 발생할 당일 2.8달러대에 머물던 XRP는 2달러 선이 무너지며 한때 1.5달러 미만까지 급락했다. 하루 만에 절반 넘게 떨어진 셈이다. 이후 가상자산 시장이 전반적으로 반등하면서 2.6달러선을 회복했지만 상승분을 일부 반납하며 이날 기준 2.3달러대에 머물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XRP는 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상승세를 보였다. XRP의 증권성을 두고 5년간 지지부진하게 이어져 온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의 소송이 올해 들어 종결 조짐을 보이면서 투자심리가 급격히 회복했기 때문이다. XRP 가격은 7월 3.5달러까지 치솟아 2018년 기록한 사상 최고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 여세를 타고 스테이블코인 USDT를 제치며 시총 3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급락 여파로 XRP의 시가총액 순위는 두 계단 내려앉아 5위로 밀려났다. 13일 신고가를 다시 한 번 경신한 바이낸스코인(BNB)은 처음으로 XRP를 제치고 시총 4위로 올라섰다. 코인마켓캡 기준 이날 오전 XRP의 시가총액은 약 1400억 달러(약 198조 8000억 원) 수준으로 6위 솔라나(SOL)와의 격차도 약 390억 달러(약 55조 3878억 원)까지 좁혀졌다.
시장 전문가들은 XRP가 단기적으로 2.7달러선을 되찾지 못할 경우 1.25달러까지 추가 하락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XRP의 상승 추세가 사실상 종료됐다는 분석이다. 특히 XRP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승인 기한이 기약 없이 미뤄지면서 투자심리 악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당초 그레이스케일과 비트와이즈, 캐너리캐피털 등 미 자산운용사들이 SEC에 제출한 현물 ETF 신청서는 17일 최종 승인 기한 앞두고 있었지만 미 연방정부 셧다운 장기화되며 승인 일정이 지연된 상태다.
앨레노어 테렛 크립토인아메리카 진행자는 “셧다운으로 SEC가 최소 인력으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누가 어떤 업무를 우선하고 있는지 불명확하다"며 "SEC는 LTC ETF 최종 승인 기한과 관련한 언론 문의에도 제대로 응답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SEC 소송 종결과 ETF 기대감 등 호재가 이미 가격에 선반영되면서 추가 상승 동력이 소진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알리 마르티네즈 가상화폐 애널리스트는 “XRP가 다시 2달러선으로 후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11일 폭락 당시 일부 거래소에서 1달러 근처까지 일시적으로 급락했던 사태 이전에는 4개월 내내 2달러 이상에서 거래됐다. 이번 하락세가 계속될 경우 다음 주요 지지선은 2.1달러 부근”이라고 전망했다.
- 김정우 기자